새 로마–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이자 세계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온 교회에 임하길 기원합니다.
존경하는 형제 주교님들과 주님 안에서 축복받은 자녀 여러분,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올해도, 시초없이 영원하신 성자이자 하느님 말씀이 육신으로 태어나신 성탄, 즉 하느님과 인간의 신비가 드러난 성탄을 찬송과 성가와 영적 노래를 통해 경축합니다. 니콜라스 카바실라스 성인에 따르면, 성찬예배 때 일어나는 것은 “주님의 성육신의 신비”이며, 예배 시작 때의 외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나라가 찬미되나이다”는 “하느님이 세 위격을 가지셨음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주님의 성육신을 통해서” 였음의 증거가 됩니다(『성찬예배 주해』, 48쪽). 성인은 또한, 우리의 주님이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격과 삶과 그 밖의 모든 측면에서, 참되고 완전한 인간상을 보여준 처음이자 유일한 분” (『그리스도 안의 삶』, 215쪽)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자 말씀의 위격 안에 인간 본성을 부여하는 것과, 은총을 통해 인간이 신화(神化)하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은 인류에게 최고의 가치를 더해 줍니다. 이 진실을 망각하면 인간에 대한 존중이 약화됩니다. 인간의 최고의 운명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을 해방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축소와 분열을 야기합니다. 자신의 거룩한 기원과 영원에 대한 희망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으로 남아 있기가 어렵고, “인간적 조건”의 모순을 다스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는 우리 세상에 폭력, 전쟁, 불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합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 평화, 정의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화를 확립하려면 인간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평화를 위한 투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견해는,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이라고 인사하며 평화를 선포하시고,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도록 격려하시는(마태오 5,44)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은 “평화의 복음”(에페소 6,15)이 전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로 가는 길은 평화를 통해서이며, 서로 간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방법보다도 비폭력, 대화, 사랑, 용서, 화해가 우선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화의 신학은 세계 총대주교청의 문서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정교회의 사회적 윤리(2020)」에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문서에 따르면,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하느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뜻에 더 반대되는 일은 없습니다. … 결국 폭력은 가장 큰 죄가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폭력은, 하느님과 우리 이웃과 함께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 우리의 창조 본성과 초자연적인 소명에 완전히 모순되는 것입니다. … 평화는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또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 그려진 대로의 창조의 깊은 실체를 밝혀주는 것입니다.”(42-44항)
평화는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의무이며, 평화는 지속적인 노력과 끊임없는 투쟁으로 얻어지는 성취입니다. 평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영구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에 대한 계속되는 위협 앞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각심과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위대한 영웅은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입니다. 종교가 평화, 연대, 화해의 힘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광신주의와 폭력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 시대에, 우리는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종교의 역할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광신주의와 폭력은 종교적 믿음에서 멀어진 결과이지, 신앙의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하느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은 종교적 광신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데 있어 가장 훌륭한 방법이 됩니다. 종교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또 인간이 유발한 파멸로부터 피조물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인류의 진정하고 참된 조력자입니다.
올해 인류는 ‘세계 인권 선언(1948년 12월 10일)’의 선포 75주년을 기념합니다. 이 선언은 “모든 민족, 모든 국가가 지향해야 할 공동의 이상”인 기본적 인도주의 이상과 가치를 요약한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생태적 조건의 보호를 중심으로 삼는 인권은, 그것이 자유 및 정의와 연관된 세계 평화의 기초이자 기준으로 인정될 때 비로소 권리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권과 평화의 미래는, 인권과 평화를 존중하고 현실화하는 문제에 있어서 종교의 기여와도 연결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과 축제적인 마음으로, 교회의 삶 그 자체가 비인간성에 대한 저항으로 이루어진다는 온전한 확신으로, 평화와 화해의 문화를 건설하는 선한 투쟁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이런 문화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협적 존재나 적수가 아니라 형제자매나 친구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와 자녀 여러분, 성탄절은 자기 인식과 감사의 시간이고,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분’과 ‘신화(神化)할 수 있는 인간’의 차이가 드러나는 시간,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라는 ‘큰 기적’을 깨닫는 시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짐으로 인한 ‘큰 상처’가 치유되는 ‘큰 기적’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육화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팔에 안고 계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앞에 경건하게 무릎을 꿇으며, 거룩한 어머니 교회인 세계 총대주교청의 축복을 전합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의 은총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고 결실을 맺고 평화롭고 즐거운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2023년 성탄절에
여러분 모두를 위해 하느님께 열렬히 간청하는
+ 바르톨로메오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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